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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e Sun Kim 김 크리스틴 선: VOGUE Interview

Aug 26, 2026

Christine Sun Kim 김 크리스틴 선: VOGUE Interview
Courtesy of the artist and Vogue Korea. Photo by Kipyung Chang.
Courtesy of the artist and Vogue Korea. Photo by Kipyung Chang.
Courtesy of the artist and Vogue Korea. Photo by Kipyung Chang.

예술이 전하는 파동, 김 크리스틴 선

김 크리스틴 선은 청인이 다수인 사회에서 발생한 오류와 긴장감을 작품으로 승화하며, 우리의 선입견과 세계 미술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녀의 신작을 한국에서 두 개의 전시로 만날 수 있다. 지금 가장 뜨거운 작가이자 패션 표현력 우등생이 서울에서 보낸 한때.

김 크리스틴 선(Kim, Christine Sun)이 국립현대미술관(MMCA)과 갤러리현대에서 전시를 선보인다. 조부모가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했고, 자신은 뉴욕을 거쳐 베를린에서 작업 중이며, 돌고 돌아 한국에서 전시를 여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관련한 기자 간담회 일정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2주년이 되는 때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나의 뿌리와 가족에게 존경심을 표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예요.” 그녀가 <보그> 촬영을 위해 갤리리현대 본관에 들어섰다. 수어 통역사와 사촌 언니도 함께였다. 사이클링 쇼츠에 회색 티셔츠를 입고 진주 목걸이를 했다. 단발머리에 동그란 안경테 때문인지 두 아이의 엄마라기보다 소녀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화보 촬영으로 입는 옷마다 이해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움직이는 포즈로 펜디 드레스의 프린지를 흩날렸고, 그에 어울리는 리마의 앤티크한 귀고리를 소독해 착용했다. 뭐든 더 해보고 싶게 만드는 촬영이었다. 단순한 흑백 형태의 작품 앞에서 그녀가 컬러를 입혔다.

다음 날 MMCA의 서울박스에서 작가와 재회했다. 그녀는 프라다의 리나일론 드레스에 메리 제인 슈즈를 신고 앙증맞은 토트백을 들고 있었다. 갤러리현대에는 이제껏 선보이지 않은 페인팅 캔버스 신작을 내건다면, MMCA 전시에선 천장고 16.8m의 서울박스를 드로잉으로 채웠다. 작가는 이 거대한 벽화 안에서 관람객이 자유롭게 거닐고 스며들기를 바랐다. 8.1m 디스플레이에선 신작 애니메이션이 상영됐다. 소리와 함께 진동이 느껴졌다. 작가는 진동으로 소리를 느낀다. 기자 간담회에는 작가와 오랜 시간 함께한 수어 통역사가 참석했다. 작가의 미국 수어(ASL)와 미국 통역사의 음성, 한국 통역사의 번역이 무리 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오류와 오해가 있을 거다. 작가는 청인이 다수인 사회에서 불통과 불안, 긴장을 감수하며 생존 모드로 살아야 했다. 작품이 주로 흑백이고 단순한 형태인 이유는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오해받을 여유가 없기에”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점차 그녀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표현 무대가 넓어지면서 부당함에 맞서는 방식이 좀 더 여유롭고 유희적으로 변했다. 그사이 엄마가 되었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물론 그녀의 작업은 여전히 사회 속에서 소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하고, 구어가 사회적 자본으로 기능하는 방식을 연구한다.

김 크리스틴 선은 뉴욕 드로잉 센터(2022), 뉴욕 퀸스 미술관(2022), 빈 제체시온(2023), 광주 비엔날레(2023), 뉴욕 휘트니 미술관(2025), 미니애폴리스 워커 아트 센터(2026) 등 국제적 전시에 참여했다. MIT 미디어 랩 디렉터 펠로우십,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아티스트 펠로우십, 포드 재단과 멜론 재단이 공동 주관한 장애 예술가 프로그램(Disabilities Futures Fellowship)을 수료했으며, 모나코 프린스 피에르 재단의 현대미술상(Prix International d’Art Contemporain)을 수상했다. 현재 그녀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런던 테이트 브리튼,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미국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뉴욕 휘트니 미술관을 비롯해 세계 주요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보그> 카메라 앞에는 세계적 작가이자 패션을 정체성의 연장으로 받아들이는 여성으로 섰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의 전시 오프닝 때 프라다의 리나일론 블랙 드레스에 메리 제인 슈즈를 매치했다. 갤러리현대에서 <보그> 화보를 촬영할 때도 패션을 즐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당신에게 패션은 어떤 의미인가?

패션은 정체성의 연장선처럼 느껴진다. 전시 오프닝이나 퍼포먼스, 디너 자리 같은 순간을 빌려 조금 과장된 방식으로 나를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작업에 담긴 내 생각으로 시선을 이끄는 좋은 방법이다. 또 패션은 삶의 한 시기를 포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할 때도 정말 즐겁다. 패션을 하나의 표현으로 완성하는 것은 결국 포즈다.

촬영 당시 안경을 쓴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길 원했다. 안경은 당신에게 특별한 아이템인가? 눈 감는 포즈를 거절한 이유도 궁금하다.

매일 안경을 쓰기 때문에 이런 나의 중요한 일상도 관람객이 알기를 바랐다. 촬영 현장에 있던 사촌이 이번 촬영에서 내가 다양한 얼굴과 표정을 보여주었다고 했는데, 그래서 더 안경 쓴 모습이 빠지지 않았으면 했다. 눈을 감은 포즈는 내 삶이 세상과 단절되는 것 같다. 내가 바라볼 수 없는 상태에서 타인의 시선 앞에 일방적으로 놓이고 싶지 않다. 눈을 감고 있으면 내 동의 없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볼거리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취하는 모든 포즈가 편안하게 느껴지느냐다. 작업 초기에는 화보 촬영을 많이 했고, 편안하지 않은 포즈를 요청받은 적도 있다. 지금은 내 이미지와 내가 어떻게 비치는지를 더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인터뷰에 앞서 작가와 작품을 설명하는 데 주의할 단어와 수식어가 적힌 문서, 참고하면 좋을 사이트 주소를 받았다. 당신은 평생 통역사, 글, 기타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오류와 혼란을 경험했기에 당연한 장치다. 이러한 ‘보호 장치’를 설정하는 이유를 좀 더 듣고 싶다.

한 대형 미술관 큐레이터가 내 스튜디오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45분 동안 농인으로서의 경험과 수어에 관해 설명하고 나서야 마지막 15분 동안 겨우 내 작업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솔직히 이런 일은 너무 자주 있다. 그 과정에서 너무 지쳐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이 가이드를 만들었다. 이 가이드를 만든 후로 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데 들이던 수고와 시간을 많이 덜었다. 농인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는 필자들과 인터뷰할 때가 많다. 백인 필자가 한국인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상태에서 한국인에 대해 글을 쓴다고 상상해보라. 이 가이드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글을 쓰는 사람, 기자, 큐레이터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실수를 하거나 상처가 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대개 의도해서가 아니라, 그 배경이나 오래 반복되어온 표현 방식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가이드는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우리의 대화가 내 작업 자체에 더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당신은 소리를 청각적 현상이 아니라 권력, 제도, 규범과 긴밀하게 연결된 사회적 체계로 본다. 청인이 다수인 사회에서 긴장과 오류, 부당함을 감수하며 생존 모드로 살아야 했기 때문일 거다. “초기 예술 활동은 사회에 대한 분노를 기반으로 했고 유쾌한 모드로 작업하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도 했다. 사랑스러운 두 딸을 얻으면서 생긴 변화일까? 아니면 지속적인 예술 활동 덕분일까?

이 변화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내 작업을 바라보는 무대가 점점 넓어지면서 분노를 드러내거나 계속 맞서 싸우는 방식 혹은 활동가적인 방식에만 기대지 않아도 된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비로소 조금 더 안심하고 유희적인 태도로 작업할 수 있었다. 둘째는 엄마가 된 이후의 변화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큰 변화를 겪어본 적이 없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결국 계속 팀으로 움직이는 일이다. 서로 조율하고 필요한 선을 정하고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며 매 순간 그때그때 방법을 찾아가는 일. 나와 내 파트너가 내리는 여러 결정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쉽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점점 더 예민해졌고, 그래서 부담이 클 때도 많다. 그렇기에 오히려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해지지 않으려고 한다.

MMCA 기자 간담회 이후 가족과 휴가를 떠났다. 어디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가? 즐겨 입은 바캉스 룩은?

MMCA 오프닝 전에는 가족과 함께 스페인에 있었고, 이후 파리로 가서 다시 가족과 합류했다. 솔직히 어린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쉽지 않고, 아주 편안한 휴식이 되기 어렵다. 하지만 아이들이 나중에 자랐을 때 오래 기억할 순간을 많이 만들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계속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동물원에 가고 수영하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르고 놀이터에서 마음껏 놀게 하고 밤에는 넷플릭스를 보는 식이다. 가족여행 중에는 기본적이고 편한 옷을 입는다. 아직은 아이와 여행을 하면서 멋을 낼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다시 물어봐주길!

왜 흑백을 자주 사용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이에 대해 “청인이 다수인 사회에서 느끼는 공포에 기인한다”고 답했다. 오류가 범람하는 가운데 최대한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려 애썼고, 그것이 흑백과 단순한 형태의 작품으로 이어졌다고 이해했다. “내 작품을 최대한 명확하게 전달하고 싶다. 오해받을 여유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다채로운 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이유는 무엇인가? 주로 어떤 유의 색이며, 색을 어떻게 선택하는지도 궁금하다.

이 역시 내가 작업 안에서 조금 더 유희적이고 실험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 비롯됐다. 이제는 내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도 관람객이 함께 따라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그래서 예전처럼 모든 것을 분명하게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낀다. 글을 조금 덜어내고, 더 추상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풀어가는 데도 관심이 생겼다. 처음에는 나를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그것도 괜찮다. 최근에는 얼핏 검은색처럼 보이는 어둡고 깊은 색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그 안에서 짙은 파란색과 초록색이 드러난다. 나의 어두운 회화에서 2차 색이 보인다면, 그것은 목탄의 번진 자국처럼 내가 남긴 흔적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사실 소리를 작업하기 전에는 회화를 했지만, 당시에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즐겁지 않았다. 소리로 오랜 시간 작업해온 뒤에야 다시 그림 그리는 일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악보, 문자언어, 인포그래픽, 미국 수어, 신체의 활용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유머를 전략적으로 배치한다. 특히 유머를 왜 도입하는지 궁금하다.

유머는 정말 유용하다. 뉴욕으로 이주했을 때 바 같은 곳에서 청인들과 가장 빨리 가까워질 방법이 유머임을 알았다. 나는 사람들을 걸러내거나 파악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상대가 무례하다고 느껴지면 거기서 끝이고, 괜찮은 사람이라면 금방 친구가 된다. 내가 관심을 두는 주제가 때로는 사람들에게 조금 무겁게 느껴진다는 걸 안다. 그래서 진지한 주제를 다룰 때도 유머가 있으면 훨씬 수월해진다. 그래야 내가 화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도 사람들이 그 자리에 여전히 함께 있어주니까.

지난해만 해도 선 크리스틴 김이란 이름이 익숙했다. 한국 전시를 준비하며 김 크리스틴 선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름의 순서를 바꾼 이유가 궁금하다.

나도 적응해가는 중이다. 한국에서는 조금 더 한국적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한국 문화와 연결되려는 노력을 해왔다. 로스앤젤레스에 기반을 둔 디아스포라 한국인 예술 집단인 ‘교포(Gyopo)’의 적극적인 회원이기도 하다. 조부모께서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면서 가족의 새로운 삶이 시작됐고, 미국에서 독일로 이주해 가정을 꾸리고 한국에서 전시를 열었다(2016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23년 광주 비엔날레 등). MMCA 전시가 열린 7월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2주년이 된 때였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전시가 더 특별할 것 같은데 어떤가?

서울의 국립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를 연다는 것은 오랜 여정을 거쳐 돌아온 것 같다.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간 가족의 삶을 다시 이어가는 일이기도 하고, 조부모님께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내가 한국에 와서 전시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남았으면 한다. 언젠가 아이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국에 오고 싶어 하길 바란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많은 이가 내 부모님이 얼마나 멋진 분들인지 알았으면 한다. 부모님은 미국으로 이주한 직후 나를 낳으셨고, 새로운 나라에서 삶을 꾸려가는 동시에 영어와 미국 수어를 함께 배워야 했다. 정말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었을 거다. 부모님이 수어를 배우고 우리 자매와 진정으로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작가가 되지 못했을 거다.

MMCA 전시명은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Have Many Dumb Fights Against Rock)’이다. ‘Rock’은 고착된 질서나 규범, 완고한 사고방식의 우리 등을 의미한다. 전시명은 이 단단한 바위와 무모한 싸움을 벌인다는 의미인데, 당신은 “집단, 학살, 식민 등 싸움으로 가득한 세상”이라 말했고, 이를 외면하지 말라고 독려하는 듯하다. 당신의 작품이 자신을 넘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길 바라나?

예술이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크게 미친다고 믿어온 편은 아니다. 오히려 실제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닿는 방식에 더 관심이 있다.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예술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계속 질문하게 된다. 그 영향 또한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

2007년 베를린의 레지던시에서 소리를 매체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이후 뉴욕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베를린에서 남편을 만나 그곳에 거주 중이다. 당신은 “사랑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하는 타입은 아니다”라며 웃었지만. 독일 아티스트인 남편 토마스 마더(Thomas Mader)는 어떤 예술 동지인가? 사실 MMCA 전시에서 세로 8.1m의 대형 디스플레이로 상영되는 애니메이션 신작도 토마스가 참여한 줄 알았다.

이번 애니메이션은 얀 요스트 페르후프(Jan Joost Verhoef)가 제작했고, 사운드는 믈라잔 마타불(Mladjan Matavulj)이 맡았다. 남편과 자주 함께 작업하지만, 이번 설치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특히 남편의 미국 수어 실력이 점점 좋아지면서 우리의 협업도 해를 거듭할수록 더 좋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처음에는 한 사람과 가족을 이루고, 작업까지 동시에 하는 것이 조금 버겁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우린 여전히 함께 보낼 시간이 부족하다!

이 영상 작품은 진동과 리듬으로 관람객이 청각, 시각, 촉각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또한 서울박스를 가득 채운 벽화와 드로잉 안에서 관람객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시각적 관람을 넘어 이런 ‘종합적 경험’의 전시가 당신에게 중요한가?

벽화나 빌보드처럼 큰 규모의 작업을 시작하면서 스케일이 만들어내는 감각과 경험에 끌렸다. 내 드로잉이 하나의 공간이 될 수 있고, 관람객에게 전혀 다른 방식의 집중, 어쩌면 일종의 대면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작품이 관람객을 집어삼킬 만큼 내 작업이 가능한 한 관람객을 깊이 끌어들이기를 바란다. MMCA의 전시에서는 관람자가 자신이 작아진 것처럼 느끼고, 이미지가 머리 위로 거대하게 드리워지는 듯한 경험을 하길 바란다.

당신은 진동으로 소리와 음악을 느낀다. 이전에는 진동이 중요한 사안이었다면, 이제는 그만큼은 아니라고 들었다. 무엇 때문인가?

처음 소리를 작업하기 시작했을 때는 저주파, 베이스, 진동이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지금은 소리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한다고 여긴다. 내 작업은 소리를 감각적 대상으로 다루기보다 정치적이거나 개념적인 구조로 바라보는 쪽으로 옮겨왔다. 작업이 이어지면서 언어 자체에 더 집중하게 된 부분도 있다. 종종 구어와 수어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한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 농인의 역사가 지워지지 않고, 그 자체로 머물며 존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8월 26일부터 10월 18일까지 열리는 갤러리현대 전시에서는 이전에 보지 못한 ‘Mind’ 시리즈를 선보인다. 그간 드로잉 위주였는데, 이번엔 페인팅한 캔버스다. 특히 ‘검은 바탕에 흰 글자’는 그동안 잘 보여주지 않은 형태고 ‘딥티크’ 연작이기도 하다. 한 쌍을 이루는 두 개의 그림 간격은 상황에 따라 넓어지거나 좁아질 수 있다.

이번에 시도한 새로운 방향이 설레면서도 긴장된다. 갤러리현대에서 볼 수 있는 ‘딥티크’ 연작은 상단 캔버스와 하단 캔버스로 이루어져 위아래로 걸리는 구조다. 이 회화는 마음에 대해 만들어가고 있는 더 큰 연작의 일부다. 내 마음을 입체적이고 조각적인 형태로 옮길 수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위아래로 캔버스를 설치할 때 두 캔버스 사이의 간격은 그때의 감각이나 전시장, 건축 조건에 따라 넓거나 좁게 조정할 수 있다. 나는 늘 작품이 놓이는 맥락을 고려한다. 그래서 작품에 어느 정도의 유연함과 움직임을 주고 싶었다. 뉴욕 휘트니 미술관과 미니애폴리스 워커 아트 센터에서 열린 지난 13년간의 작업을 조망하는 서베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큐레이터 팀과 정말 오랜 시간 기획하고 아카이빙하는 과정을 거쳤다. 내 작업에서 큰 흐름 하나를 지나 마침내 새로운 무언가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는 더 특별하다.

그간 사회적 불합리에 집중했다면, ‘Mind’ 시리즈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시도가 느껴진다.

맞다. 내 마음은 늘 무언가를 향해 있고, 늘 무언가가 마음에 머물러 있다. 마음은 쉽게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잘 돌봐야 한다. 이제는 주변 동료의 마음 상태가 괜찮은지, 그렇지 않은지도 조금은 보인다. 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적응해가는지, 어떤 일로 인해 큰 상처를 입거나 오래 남는 자국을 갖는지 계속 곱씹게 된다. 마음을 무게와 표면, 부피를 가진 단단한 대상으로 작업 안에서 풀어내고 싶다. 그렇게 마음을 바라보면 마음이 자기만의 역사와 욕망을 지닌, 내 안의 또 다른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에 적힌 ‘Strong Mind’라는 작은 글귀가 눈에 띈다. 직접 만난 당신은 친절하고 자주 웃지만, 단단한 내공이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스트롱 마인드를 가질 수 있는가?

나도 좋은 조언이 있으면 좋겠다.(웃음) 계속 상황을 헤쳐나가고, 필요한 조율을 해나가는 일이 마음을 단단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물론 언제,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예전에는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일이 자주 있었다. 심리 상담이 많은 도움이 됐다. 조금 더 거리를 두고 상황을 바라보게 되고, 내 트라우마에도 덜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되었다. 와인도 도움이 된다. VK

피처 디렉터 김나랑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장기평
헤어 권영은
메이크업 김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