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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Park Minjoon 박민준 : Story of Rapport

Jul 1, 2020

Park Minjoon’s first novel Rapport Circus invites readers to the fascinating world of magic. The novel is full of the protagonist Rapu’s touching growth undergoing numerous and ceaseless frustrations, trials and errors to eventually become the best tightrope walker. In the story a blue monkey which can speak, a green tiger, the head of the circus troupe with beanpoles and an animal handler with her head from which trees grow appear on stage. Gallery Hyundai has revealed these characters only exist in the artist’s story from his pure imagination through his solo exhibition of the same name 2018. We invite you enter the world within his book Rapport Circus transported by his art works. 

박민준의 첫 장편소설  『라포르 서커스』는 독자를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로 초대한다. 이 소설은 곡예사 라푸가 쌍둥이 형인 라포를 선망하며 수많은 좌절과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최고의 쇼를 선보이는 감동적인 성장기를 담고 있다. 소설 속에는 사람과 대화하는 파란색 원숭이, 초록색 호랑이, 복화술 하는 꺽다리 단장, 머리에서 나무가 자라는 동물 조련사 등 매혹적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2018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동명의 개인전 《라포르 서커스》에서 작가는 상상과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이들의 모습을 세상에 공개했다. 소설  『라포르 서커스』의 일부와 라푸의 작품을 함께 공개한다.

Rapu-Rapu with Bear Head, 2018, Oil on canvas, 86.5 ×66.5 cm

그렇지만 웬일인지 한날한시 동시에 태어난 라푸는 그와 매우 달랐다.
신체는 흡사 나무토막에 가지를 박아논 듯 뻣뻣했다.
매일같이 반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줄타기 동작마저도 라푸에겐 쉽지 않았다.
간신히 줄 위를 왕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묘기라고 하면 줄 위에 앉는다거나 뒤로 방향을 바꾸는 정도가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Rapu-Ritual, 2018, Oil on canvas, 45 × 35.5 cm

'언제나 좋은 일 뒤엔 나쁜 일이 꼭 붙어 다니는 법이야.'
라푸는 언젠가 엘린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좋은 일 뒤엔 나쁜 일...'
라푸는 그 말을 입속에서 여러 번 되뇌었다.
Rapu-Aika, 2018, Oil on canvas, 35.5 × 28 cm

아이카의 특기는 날카로운 칼로 저글링을 하거나 멀리 떨어진 과녁 맞추기,
단검을 던져 목표물을 정확히 베는 묘기 등이었다.
특히 관객 중 한 명을 불러내어 커다란 원판 앞에 세운 뒤,
그 관객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맞추는 묘기는 실로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지금이야 실수 따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완벽한 기술을 선보이는 아이카였지만,
그런 그에게도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그가 칼 던지기 기술을 연마할 당시, 그녀의 가장 소중했던 친구를 죽게 한 일이었다.
Rapu-Fireworks in the Night Sky, 2018, Oil on canvas, 100.5 × 72.5 cm

"우르르르릉 쿠와앙!"
귀를 찢을 듯 엄청난 소리를 내며 대포 입구에서 거대한 빛줄기가 밀려 나오듯 둥글게 솟아올랐다.
순간 하늘을 향해 엄청난 둘레의 불기둥이 뻗어 나왔다. 사람들은 강렬한 빛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신기하게도 눈이 빠르게 적응되며 찬란한 빛의 세세한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원들의 마음속에선 이유를 알 수 없는 먹먹한 감동이 일었다.
...그렇게 몇번의 갈라짐과 솟기를 반복하던 순간 그토록 찬란히 빛나던 불꽃들이 갑자기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 어둠은 결코 어두운 느낌이 아닌 어둠이었다.
불빛으로 만들어 내는 어둠이라니,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진귀한 광경이었다.
Rapu-Papa, 2018, Oil on canvas, 53 × 45 cm
Rapu-Circus Master, 2018, Oil on canvas, 72.5 × 60.5 cm

단장의 외모를 묘사하려고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굳게 다문 입술과 무표정한 얼굴, 깊은 눈과 하얀 머리칼, 하지만 무엇보다 단장을 상징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3미터나 되는 그의 기다란 꺽다리였다.
단장은 그 긴 다리를 이용해 웬만한 성인 머리 위를 간단히 넘어 다닐 수도 있었다.
실제로 눈앞에서 보면 한껏 고개를 들어야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의 높이여서 조금은 위압감이 들기도 했다.
Rapu-Elena, 2018, Oil on canvas, 45 × 35.5 cm

엘레나는 짐승들을 효율적으로 조련하기 위해 자신만의 독특한 기술을 사용한다.
먼저 조련이 필요한 짐승들을 제한된 공간에 가두고 피라미드 모양의 조련 도구를 그 앞에 던진다.
그 신비한 물체에선 눈이 멀 정도의 강렬한 무지갯빛 광선이 뿜어져 나오고
광선에 노출된 동물들은 일시적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다.
엘레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머리 위 나무에 달린 방울을 흔들어 소리를 낸다.
Rapu-Fall, 2018, Oil on canvas, 100.5 × 72.5 cm

중력이란 말이야. 우리가 서 있는 땅이 우리를 그리워하는 마음과도 같은 거야.
무슨 말이냐면, 인간이란 원래 땅에서 태어나 죽으면 땅 속으로 돌아가는 존재들이잖아.
그것도 잠시 동안 말이야. 땅이 잠깐의 외출을 허락해 준 거야. 세상 구경을 해보라구.
.... 그렇게 이 땅은 네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네가 죽는 날까지 언제나 똑같은 힘으로 사랑해 왔고 또 사랑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중력이야 말로 땅이 너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인 셈이지.
그러니까 줄 위에서 느껴지는 추락의 공포심 따윈 지워 버려.
그건 너를 위협하는 공포가 아닌 단지 너를 안고 싶어하는 이 땅의 사랑과도 같은 거니까.
Rapu-Missing Bluebird, 2018, Oil on canvas, 45 × 35.5 cm

언제고 파랑새를 찾아 다시 돌아올 것을 생각하니 이것들은 꼭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거지.
그때를 대비해 집안 깊숙이에 새장들을 고이 모셔두고는 파랑새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났어.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정할 수 없었기에 무작정 새가 날아가 버린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어.
산을 넘고 들을 지나 강을 건너고 또 바다를 건넜어.
계속된 파랑새 찾기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지경이었지.
그렇지만 광대는 세상 어디에고 파랑새가 살아만 있다면 반드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란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어.
기필코 다시 찾아내 그토록 아름답던 파란 깃털과 감미롭기만 하던 지저귐,
그리고 손가락 끝에 머리를 비벼대던 부드러운 감촉을 다시 느끼고야 말리라 재차 다짐했지.
Rapu-Dream, 2018, Oil on canvas, 100.5 × 72.5 cm

Bravenum, 2018, Oil on canvas, 162 × 120 cm

그날밤, 라푸는 브레넘 용사들의 꿈을 꿨다.
족히 7미터는 넘을 전투 코끼리와 그 앞에 꿈틀대는 네 마리의 뱀이 달린 지팡이를 쥐고 선 브레넘 여신의 모습,
그리고 그 어깨 위에서 곡예를 하듯 올라선 고대 전사, 그의 두 팔은 수십 개로 갈라지며 독수리의 깃털로 변하고 있었다.
주위엔 금방이라도 뛰쳐나가려는 난폭한 짐승들과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는 한 명의 소년이 그 앞에 앉아있었다.
Rapu-Rapos Last Dance, 2018, Oil on canvas, 72.5 × 60.5 cm

그의 모습은 하늘에 떠 있는 새와 같았다.
사람들은 그가 공중에 떠 있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날아올랐다고 주장했다.
줄이 끊어지며 마치 조련사의 채찍처럼 그의 옆으로 휘어 떨어질 때, 라포는 잠시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시차를 두고 줄은 떨어졌고, 줄이 없는 상태에서 라포가 한동안 공중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Rapu - At the Center of the World, 2018, Oil on canvas, 35.5 × 28 cm

자신을 향한 박수갈채가 마치 아름다운 선율처럼 들려왔다.
그리고 그러한 환호가 분명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고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사실에 뭉클했다.
기쁨, 환희, 흥분, 쾌감, 세상의 모든 언어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을 적절히 표현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출렁이는 줄의 탄성을 온몸으로 느끼며 라푸는 그토록 기다리던 자신의 때가 온 것을 실감했다.
또한, 이런 자신만의 시간이, 이런 행복이, 끝없이 영원토록 계속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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